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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가족의 굴레, 아동 방임, 사회 책임

by rim-ku 2026. 6. 17.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틀었는데,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나서 흘린 눈물은 없었습니다. 대신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은 채로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그 감각을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카페에서 마주친 아이들, 영화 속 아이들

저는 카페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수십 명의 손님을 마주치는데, 그중에는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도 꽤 됩니다. 아이가 딸기 라떼를 가리키며 "이거 먹어도 돼요?" 하고 물으면, 부모가 웃으며 "그래, 시켜줄게" 하는 장면이 그냥 일상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을 보고 난 뒤에는 그 장면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자인은 열두 살 안팎의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하루는 먹고 싶은 걸 고를 시간이 아니라,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시간입니다. 매일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고, 여동생이 팔려 나갈까봐 노심초사합니다. 카페에서 제가 당연하게 보아온 장면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닿지 못할 일일 수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아동 방임(child neglect)이라는 개념이 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아동 방임이란 보호자가 아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양육, 교육, 의료적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인의 부모는 자인을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아동 방임은 학대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며, 보건복지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 학대 신고 건수 중 방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었던 이유

자인이 집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처음에 단순한 가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아니 직접 따라가며 보니, 이건 가출이 아니었습니다. 자인에게 그 선택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무작정 버스에 오른 자인은 낯선 사람들의 세계로 떠밀리듯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여성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불법 체류자(undocumented migrant)란 합법적인 체류 자격 없이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이들은 의료·교육·법적 보호에서 모두 배제된 상태에 놓입니다. 자인은 그 여성의 아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잠자리를 얻습니다. 아이가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 가슴에 걸렸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슬픔보다 답답함이었습니다. 자인이 무언가를 해결하려 할 때마다, 시스템이라는 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계. 그 냉정함이 영화 내내 이어집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 무국적 아동은 수백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출생 등록이 되지 않아 교육·의료·법적 보호 모두에서 소외됩니다.

법정 장면이 가장 오래 남은 이유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법정 장면입니다. 자인이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왜 나를 낳았냐"고 묻는 그 순간, 저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습니다.

평소 저는 가족애를 다루는 영화에 유독 약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대신, 가족의 책임을 정면으로 묻습니다. 자인의 한 마디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 한 번도 누리지 못한 보호,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삶 전체를 압축해놓은 말처럼 들렸습니다.

이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연출이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담담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음악도 없고, 카메라가 극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도덕적 감정 강요(moral didacticism)라고 하는, 관객에게 "이 장면에서 울어야 한다"는 식의 신호를 보내는 연출 방식을 이 영화는 철저히 거부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가 울라고 떠밀지 않는데도 더 오래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지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의 시선으로만 현실을 서술한다. 어른의 해설이 끼어들지 않는다.
  • 가난과 난민 문제를 감동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 부모를 악인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구조적 빈곤 속에 놓인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질문이 남는다. 이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이야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영화 바깥의 이야기였습니다. 자인을 연기한 소년은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입니다. 그는 영화제 이후 노르웨이에 정착해 교육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삶이, 실제로도 비슷한 삶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제작진은 촬영 이후에도 출연 아동들과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영화가 단순한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으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사회적 책임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제작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긴 드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가버나움은 보기 불편한 영화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슬픔이 아니라 불편함이 계속 찾아왔고, 그 불편함이 끝난 뒤에도 쉽게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좋은 영화는 딱 그런 느낌을 남깁니다. 다 보고 나서 바로 다른 걸 틀 수가 없는, 그 여운 자체가 이 영화의 힘이라고 봅니다.

가버나움을 보고 나면 한동안 주변을 다르게 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 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앉아 있는 가족을 볼 때, 저는 이제 그 풍경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저에게 남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SFjiKDxf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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